박정민 열풍이 특별한 건 ‘노력하지 않는 매력’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룡영화제에서 화사에게 빨간 구두를 건네며 무대에 오르고, 무심한 듯 춤을 추다가 마지막엔 “구두 가져가”라며 유머로 마무리한 그 5분의 퍼포먼스는 절제와 여유의 미학이었다.
발매 한 달 만에 멜론 1위를 기록한 음원 역주행 과 2019년 출간된 그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 오디오북이 예스24 1위에 오른 현상은 단순한 인기 폭발이 아니다. 이건 현대 한국 사회가 어떤 감각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024년 후반, 대한민국은 피로했다. 무한 자기계발을 강요받고, SNS에서는 끊임없이 ‘최선’을 증명해야 하며, 모든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해야 진심이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 그런 공기 속에서 박정민의 태도는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그는 애쓰지 않는다. 화려한 제스처도, 과장된 애정 표현도 없이, 그저 거기 있다. 그런데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연기 활동을 1년간 중단하고 출판사 일에 매진하는 그의 선택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내려왔다.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선택은 사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정작 흥미로운 건, 박정민 본인은 이 열풍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걸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그렇게 한다고 사회가 더 좋아질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길 거부한다. 이 솔직함이 또 매력이 되는 역설.
우리는 지금 ‘진짜’를 찾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진심, 계산되지 않은 태도, 과장되지 않은 멋을. 박정민은 그걸 가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도 일종의 페르소나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에게서 숨통을 틔울 공간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이 열풍은 곧 잠잠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덜 애쓰는 매력’의 효과는 남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잠시, 숨 가쁘게 달리는 것을 멈추고 싶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