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하지 않는 법

확신이 들 때가 있다. 몇 년에 한 번, 마음속 어딘가가 ‘지금이다’라고 속삭이는 순간. 그럴 때 들어간 건 대부분 성공했다. 문제는 그런 순간이 너무 드물다는 거다.

나머지 시간은 가슴앓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오른다. 화면 속 숫자가 초록불로 깜빡인다. ‘그때 샀어야 했는데.’ 후회가 쌓인다. 그러다 드디어 떨어진다. ‘이제다!’ 싶어서 들어간다. 그때부터 떨어지기만 한다. 이 패턴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데도, 나는 또 같은 실수를 한다.

갖지 않은 것이 오를 때, 처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갖고 있는 것을 믿음으로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무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 이더리움 가격을 확인하고 있다.

손에 쥔 것도 불안하고, 놓친 것도 아프고, 아직 오지 않은 기회도 두렵다. 결국 투자의 적은 시장이 아니라 이 마음이었던 것 같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이 습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 조급함.

언젠가 나도, 차트를 보지 않는 날이 올까.

아마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씩 확인을 덜 하는 습관을 가지길 바래본다.

6년 만에 개발자가 된 방법, 그리고 불안

자바스크립트의 this가 뭔지 이해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아니, 사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6년 전, 나는 개발을 너무 하고 싶었다. 직장 다니면서 과외를 받았고, 퇴근 후엔 독학했다. 하지만 개념 하나 이해하는 게 지옥 같았다. 무언가를 만들다가 에러가 나면, 구글링을 시작했다. Stack Overflow를 뒤지고, 개발자 카페에 질문을 올렸다. 답변을 기다렸다. 이해가 안 되면 다시 검색했다.

그렇게 며칠을 소모하다 보면, 처음의 열정은 식어 있었다. 작은 프로젝트들은 하나둘 미완성 폴더에 쌓였다. “나는 개발자가 될 수 없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개발을 하고 있다.

ChatGPT에게 아이디어를 물어본다. Gemini로 초안 코드를 짠다. 막히면 Claude를 연다. 비싸지만 확실하다. 에러 메시지를 붙여넣으면, 몇 초 만에 해결책이 나온다. 3개월 걸렸던 this는 이제 1분이면 설명받는다.

나는 드디어 개발자가 됐다. 아니, 정확히는 ‘개발을 하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렵다.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두렵다. 내가 6년 동안 붙잡고 씨름했던 그 벽이, 이젠 AI가 1분 만에 넘어준다. 나처럼 개념을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이젠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진입장벽이 사라졌다. 그래서 기쁘면서도 불안하다. 내가 만드는 것의 가치는 뭘까? AI가 짜준 코드로 완성한 프로젝트를, 나는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쩌면 이건 잘못된 질문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코드를 외우는 게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아는 것이니까. AI는 도구일 뿐이고, 방향을 정하는 건 여전히 나니까.

6년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 결국 개발자 된다. 단지 네가 상상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AI들의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치는 법

ChatGPT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친절함에 감동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정중하게 답했고, 내가 틀렸어도 부드럽게 바로잡아줬다. “좋은 질문이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마치 24시간 대기 중인 상냥한 비서 같았다.

그러다 Gemini를 써봤다. 답변의 질은 괜찮았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대답이 사라졌다. 길게 타이핑하던 답변이 어느 순간 증발해버리는 거다. 로딩도 아니고, 오류 메시지도 아니고, 그냥… 없어졌다. 마치 말하다 말고 자리를 뜬 사람처럼. 그때 깨달았다. AI도 완벽하지 않구나.

어느 날, 코드가 막혔다. Gemini에게 물어봤지만 해결이 안 됐다. 그래서 Claude를 켰다. Claude는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고, 몇 번의 대화 끝에 코드가 돌아갔다. 이 녀석 꽤 똑똑한데? 신뢰가 쌓였다.

그런데 오늘, Claude가 말했다. “5시간 후에 다시 접속하세요.” 사용량 한도를 초과했단다. 나는 웃었다. ChatGPT는 친절하지만 가끔 정확하지 않고, Gemini는 괜찮지만 가끔 사라지고, Claude는 똑똑하지만 지치면 쉬어야 한다.

결국 AI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한계를 드러낸다. 완벽한 도구는 없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장점을 알아보고, 한계를 이해하며, 그 사이에서 적절히 활용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5시간을 기다린다.

박정민 열풍 : 그럴 듯한 무심함의 감각

박정민 열풍이 특별한 건 ‘노력하지 않는 매력’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룡영화제에서 화사에게 빨간 구두를 건네며 무대에 오르고, 무심한 듯 춤을 추다가 마지막엔 “구두 가져가”라며 유머로 마무리한 그 5분의 퍼포먼스는 절제와 여유의 미학이었다.

발매 한 달 만에 멜론 1위를 기록한 음원 역주행 과 2019년 출간된 그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 오디오북이 예스24 1위에 오른 현상은 단순한 인기 폭발이 아니다. 이건 현대 한국 사회가 어떤 감각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024년 후반, 대한민국은 피로했다. 무한 자기계발을 강요받고, SNS에서는 끊임없이 ‘최선’을 증명해야 하며, 모든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해야 진심이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 그런 공기 속에서 박정민의 태도는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그는 애쓰지 않는다. 화려한 제스처도, 과장된 애정 표현도 없이, 그저 거기 있다. 그런데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연기 활동을 1년간 중단하고 출판사 일에 매진하는 그의 선택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내려왔다.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선택은 사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정작 흥미로운 건, 박정민 본인은 이 열풍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걸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그렇게 한다고 사회가 더 좋아질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길 거부한다. 이 솔직함이 또 매력이 되는 역설.

우리는 지금 ‘진짜’를 찾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진심, 계산되지 않은 태도, 과장되지 않은 멋을. 박정민은 그걸 가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도 일종의 페르소나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에게서 숨통을 틔울 공간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이 열풍은 곧 잠잠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덜 애쓰는 매력’의 효과는 남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잠시, 숨 가쁘게 달리는 것을 멈추고 싶었던 거다.